이동 삭제 역사 ACL 마이클 조던/생애 (r2 문단 편집) [오류!]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기울임취소선링크파일각주틀 === 그는 왜 3순위에 그쳤나? ===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포지션''' 때문이었다. 그는 대학 최고의 선수였으나 가드, 그것도 슈팅 가드였기에 대학 시절 압도적인 활약에도 불구하고 기대치가 낮았고, 이 때문에 밀린 것. 20점 언저리에 불과한 스탯 때문에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조던은 당시 올라주원과 보위, 심지어 유잉까지 능가하는 대학 최고의 선수였다.[* 딘 스미스는 절대로 선수의 개인플레이에 의존하지 않고 팀농구를 강조하는 감독이다. 참고로 조던이 1학년 때 팀의 에이스였으며 3학년 마치고 NBA진출해 1982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뽑힌 제임스 워디의 3학년 성적이 15.6점이었다. 사실 선수 성장 측면에선 이런 식의 지도방식이 효과적인데, 덕분에 고등학교 졸업 당시 점프슛이고 기본기고 완성이 되지 않았으나 탁월한 개인기와 운동능력으로 시즌 트리플더블을 할 정도로 혼자 북치고 장구치던 마이클 조던은 스미스의 지도 하에서 완벽에 가까운 기본기와 팀플레이를 익힐 수 있었다. 조던이 원맨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실제로 그의 경기를 보면 볼 없을때 움직임 (스크린을 활용해 수비 를 떼어내거나 기습적으로 골밑으로 쇄도하는 백도어 컷인 등), 도움수비를 통해 기습적인 블록이나 스틸을 하는 등 팀 시스템 내에서 움직이는 플레이가 매우 훌륭한 것을 알 수 있다.][* 전혀 반대방향의 지도를 받은 것이 바로 [[피트 마라비치]]로, 그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감독 프레스 마라비치는 찬란한 재능을 지닌 아들을 원하는대로 공격하게 해주었고 그는 대학시절 통산 44.2점이라는 무지막지한 기록을 냈다. 그러나 마라비치의 팀은 한 번도 NCAA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했으며, 프로시절에서도 그는 레전드급 개인기량과 눈부신 개인기록과 별개로 한 번도 뛰어난 팀플레이어였던 적이 없으며, 커리어 통틀어 단 두 번의 위닝시즌만을 경험했다.(마지막 시즌이 은퇴 전 [[래리 버드]]의 셀틱스에 합류했고 시즌 절반 이상 결장한 것을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한 번이나 마찬가지다) 또다른 예로 대학에서 30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1994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지명된 글렌 로빈슨 역시 개인기량과 별개로 팀플레이는 미미했다. 그만큼 아마추어급에서 팀플레이를 가르치지 않고 한 선수의 압도적인 개인기량에 의존하는 것은 성장세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당시 NCAA "올해의 대학선수상"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볼 필요가 있다. 2020년대인 현재 NCAA에서 웬만큼 뛰어난 유망주들은 1, 2년만 뛰고 NBA에 직행하는 경우가 많아 1, 2학년부터 괴물같은 활약을 펼친 [[케빈 듀란트]]나 [[블레이크 그리핀]]같은 경우가 아닌 이상 대학최고의 선수들은 [[J.J. 레딕]]이나 지머 프레뎃, 타일러 핸스브로같이 유망주로서는 가치가 떨어져서 대학에 오래 남는 선수들이 많다. 잠재력이 떨어져도 대학에서 오래 뛴 선수들이 적어도 대학무대에선 더 잘할 확률이 높기 때문.[* 이 때문에 야구의 트리플 A에서 지나치게 오래 뛴 선수들은 아무리 잘해도 메이저에서 외면을 받는다. 그 선수의 재능보다 그 경험치 덕분에 잘하는 거라고 보기 때문.] 그러나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선수들은 최소 대학에서 2, 3년을 뛰었으며[* 조던이 다니던 1980년대엔 더했다. 1980 드래프트~1990 드래프트까지 1라운드 1순위들을 보면 11명 중 8명이 대학 4년을 다 다니고 NBA에 왔으며 나머지 선수들은 3년을 다녔다. 1979년에 뽑힌 매직은 2학년이었지만 그 전 1970년대 1순위들은 전부 3, 4학년들이었다. 실제로 1993 드래프트에서 2학년으로 1라운드 1순위로 뽑힌 [[크리스 웨버]]는 매직 존슨 이후 최초로 1순위 지명된 저학년(underclassman)이었다. 1980년부터 1992년까지 13년동안 3학년, 혹은 4학년만이 1순위로 지명되었다는 것.] [[팀 던컨]], 엘튼 브랜드[* 다만 브랜드의 듀크 대학은 2000년대 초반까지 전원 졸업이란 방침을 고수했다.], 그랜트 힐, 데이비드 로빈슨같은 특급 유망주들도 4년을 다 뛰었다. 이 때문에 당연히 NCAA의 전체적인 기량 수준이 지금보다 높았으며 프로에 진출하자마자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도 비교적 많았다. 이 때문에 당시 올해의 대학선수상을 수상하는 선수들은 그야말로 특급 유망주들이자 진짜 실력자들이 대부분이었으며 (물론 라이오넬 시몬스처럼 평범한 선수들도 가끔 있었지만) 권위있는 상들은 네이스미스, AP, 아돌프 럽, 존 우든, 오스카 로버트슨, NABC, 스포팅 뉴스상을 모두 석권하는 건 그야말로 레전드 뿐이었다. 그 대단한 패트릭 유잉조차 석권엔 실패했으며 조던에 앞서 모든 상을 석권한 랠프 샘슨은 1라운드 1순위였다. 그리고 조던은 1983-84 대학시즌 당시 이 모든 상을 싹쓸이했다. 그러나 조던은 가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센터 선호도가 엄청나게 높았다. 빅맨 선호도를 그나마 완화시킨게 조던을 필두로 한 슈퍼스윙맨들의 성공이었으니... 실제로 1980년대에 1순위로 뽑힌 10명의 선수들 중 '''7명이 센터였으며''' 나머지 세 명은 포워드였다. 1979년에 가드 매직 존슨이 1순위로 뽑히긴 했지만 매직은 그 중요도가 입증된 '''포인트 가드'''였다. 또한 매직이 뽑히던 해에는 압도적인 센터가 없었으며[* 사실 이 해에 매직과 버드란 슈퍼루키들 때문에 은근히 부각이 안되는데 1979 드래프트는 흉작까진 아니지만 은근히 스타가 없었다. 1라운드 2순위로 뽑힌 선수는 데이비드 그린우드로 올-루키 퍼스트 팀에 오른 것을 빼면 수상이력이 하나도 없는 평범한 선수였으며, 그외에 1라운드에선 시드니 몽크리프만 레전드급이고 3순위로 뽑힌 1회 올스타 [[빌 카트라이트]] 2회 올스타 짐 팩슨, 1회 올스타 캘빈 냇 정도만 눈에 띌 뿐이었다. [* 재밌는건 오히려 하위 라운드에서 스타들이 나왔는데 그 유명한 [[빌 레임비어]]가 3라운드 출신이며, 유타 재즈는 레전드급 수비수 마크 이튼을 무려 5라운드 107번에 주워왔다. 아이러니한 건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이 둘이 이 드래프트 최고의 센터들이었다는 점. 재즈가 팀의 기둥이 된 존 스탁턴과 칼 말론을 각각 14번, 13번으로 뽑았다는 걸 생각하면 유타 프런트의 안목이 정말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 클래스였다면 조던 역시 1라운드 1순위가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문제는 올라주원과 보위란 특급 유망주와 함께 나왔다는 것(보위는 부상 위험 때문에 올라주원에 밀린것 뿐이지 대학 시절 위상은 올라주원과 맞먹었다).] 반면에 조던이 뽑힌 1984년엔 특급 센터 유망주가 [[하킴 올라주원]], 샘 보위까지 두 명이나 있었으니 이들을 제치고 '''슈팅 가드'''인 조던이 뽑힐리가 없었다. 실제로 유망주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치로 보면 슈팅 가드는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 가장 낮다. 21세기 들어서도 선호도가 높은 포지션은 센터(2022년 현재 거물급 센터가 드문 것은 유망주 풀이 고갈된 것에 따른 것이 크며 2007년에 정통센터인 그렉 오든이 등장했을때는 객관적인 실력과 대학에서 활약에서 그와 동갑인 케빈 듀란트가 훨씬 앞섰음에도 오든이 압도적인 1순위 후보로 꼽혔다.)와 포인트 가드이며, 그 다음이 포워드 포지션이고 마지막이 슈팅 가드이다. 조던이 드래프트되던 1984년에는 NBA 역사가 이미 40년에 가까웠음에도 모든 포지션 중 '''슈팅 가드만 유일하게 MVP를 배출하지 못한''' 상태였다.[* 조던 이전 세대에서 뛰어난 두각을 나타낸 슈팅 가드는 사실상 듀얼 가드로 활동했던 '로고맨'[[제리 웨스트]]가 거의 유일했다.] 또한 그 이전까지 팀을 우승으로 이끌던 리그 최고수준의 에이스들은 센터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 다음이 PG나 SF, 이들보다는 적게 파워 포워드도 있었지만 슈팅 가드는 없다시피 했다.[* [[스테판 커리]]나 [[케빈 듀란트]]같은 3점 킬러들이 SG가 아닌 것도 같은 이치다. [[클레이 탐슨]]이나 [[제임스 하든]]은 정말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슈팅 가드 포지션의 현역 선수는 딱 저 둘만 안다. 아니, 오히려 저 둘도 모를 수도 있겠다....] 제리 웨스트의 경우 커리어 랭킹 등에서 슈팅 가드로 주로 분류되고는 있으나, 게임리딩을 팀에서 가장 많이 했으며 플레이스타일상 공격형 포인트 가드나 듀얼 가드에 가까웠다. 실제로 백코트 파트너도 슈팅 가드였던 게일 굿리치였다. (굿리치는 웨스트 곁을 떠난 이후 리딩가드로 변신한다.) 그외에 레전드로 꼽히던 슈팅 가드를 보면 길거리 출신으로 화려한 플레이를 자랑하던 얼 먼로, 윌트 체임벌린 이후/마이클 조던 이전까지 가장 압도적인 득점기계였던 조지 거빈, 현란한 볼핸들링과 패스/강력한 득점력을 겸비한 피트 매러비치 등을 꼽을 수 있으나 개인기량에 비해 팀을 승리로 이끄는 능력은 다른 레전드들에 비해 부족하다고 평가받은바 있다. 실제로 조던 이전까지 "득점왕은 우승을 못한다(A scoring champion doesn't win championships)"란 속설이 있었고, 이를 깬 선수는 역사상 조던 외에 조지 마이칸, 카림 압둘자바, 샤킬 오닐 뿐이었으며 '''모두 센터였다.'''[* 여담이지만 이 셋이 득점왕+우승 콤보를 이뤄낸 횟수를 모두 합쳐도 조던이 혼자 해낸 횟수보다 적다.] 실제로 ESPN의 포지션별 랭킹을 보면 [[http://www.espn.com/nba/story/_/page/nbarankSGs/ranking-top-10-shooting-guards-ever|#]] 역대 톱10중 조던시대 이전 선수는 단 두 명, 웨스트와 거빈 뿐이다. 사실 ESPN 랭킹이 신빙성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미국 언론의 평가도 조던 이후 슈팅 가드들이 조던 이전 슈팅 가드들보다 전반적으로 훨씬 높다. 게다가 웨스트의 경우 위에 언급된 것처럼 포인트 가드로 주로 뛰었었고, 거빈도 후대에서나 슈팅 가드로 분류되지 실제론 스몰 포워드로 거의 출장했다. 이런 상황이니 비록 부상이 있다고는 하나 최고의 대학 센터 중 하나였던 보위를 제치고 조던을 뽑을 팀이 있을리가 없었다. Jordan Rules를 써냈으며 "조던 전문 기자"로 유명한 샘 스미스의 회고에 따르면 실제로 조던을 드래프트한 불스의 로드 쏜 단장도 조던을 뽑고선 그리 기뻐하지 않았다고 한다. [[http://www.nba.com/bulls/news/jordanhof_prequel_090824.html/|#]] 당시 불스는 "올해의 대학선수" 조던 대신에 모든 팀들이 그랬듯이 센터를 원했으며, 쏜이 조던을 뽑고 나선 "그(조던)가 매우 뛰어난 공격수이지만 압도적인(overpowering) 공격수는 아닙니다. 그는 이 팀을 확 바꿔놓진 못할 겁니다"라고 했으며 "그가(조던이) 7피트였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센터가 없었습니다. 어쩌겠습니까?"라고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 조던은 신인 시절에 총득점 1위/평균득점 3위를 기록하며 1987 시즌은 윌트 체임벌린 이후 최초로 시즌 3000점을 넘기는 등 NBA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가 된다. 또한 전설적인 대학농구 감독이자 1984 올림픽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바비 나이트는 굉장히 깐깐한 걸로 유명한 호랑이 감독이었는데도 올림픽 당시 조던이 보여준 기량에 매료되어 친구인 포틀랜드 단장 Stu Inman이 센터가 필요하다고 하소연을 하자 "그냥 조던을 뽑아서 센터로 써"란 말을 하기도 했다. [[https://www.espn.com/espn/espnfilms/story/_/id/8748334/espn-films-documentary-examines-sam-bowie-legacy|ESPN]] 물론 드래프트 당시 198cm/85.5kg이던 조던이 센터로 뛰는 건 실제로는 불가능했겠지만 그만큼 그의 실력이 대단했다는 말. 다만 결정적인 이유는 포지션 때문이라도 타이밍 탓도 있었다.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에서 그를 뽑은 로드 쏜은 "우리에게 행운이었던 건 드래프트가 올림픽 전에 열렸다는 겁니다. 마이클은 올림픽 덕분에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많은 아마추어 운동선수가 됐으니까요"라고 했듯이 드래프트는 NCAA 토너먼트 후, 올림픽 전에 열렸다. NCAA 토너먼트는 전세계 스카우트들이 지켜보며, 여기에서 활약은 드래프트 순위에 영향을 주게 된다. 여기서 네 개 지역으로 나뉘어 각각 시드를 받으며, 각자 토너먼트를 치러 승자 네 팀이 Final Four이 되어 토너먼트를 이어가는데, 동부 지역 톱시드팀인 노스캐롤라이나가 16강에서 인디애나에게 업셋을 당하며 탈락하고 만 것. 단판적인 토너먼트에서 종종 나오는 충격의 업셋이었다. 참고로 여기서 우승팀은 패트릭 유잉이 이끄는 조지타운대학, 준우승팀은 바로 1순위 하킴 올라주원의 휴스턴이었다. 2순위 샘 보위의 켄터키 대학은 4강까지 진출해 조지타운에 패배. 올해의 대학선수상은 시즌 전체 활약을 보기 때문에 조던이 싹쓸이했지만, 정작 중요한 토너먼트에서 팀의 탈락이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맹활약으로 주가를 회복했을 수 있으나, 정작 올림픽 전에 드래프트가 열린 것. 올라주원이 워낙 주가가 높았기에 조던이 1순위를 노리는 건 무리였지만, 만약 토너먼트에서 선전했거나 (시간상 불가능하긴 하지만) 올림픽 이후 드래프트가 열렸다면 부상 병력이 심한 보위까지는 제칠 가능성도 있었다. 여담으로 이때 업셋을 당한 조던이지만 프로 커리어에서는 단 한 번도 업셋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초창기에는 수차례 업셋을 하게 된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조던은 순위가 밀려 3순위로 뽑히게 된다. im preview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함으로써, 사용자는 본인이 기여한 콘텐츠가 CC BY-NC-SA 2.0 KR에 따라 배포되며, 해당 콘텐츠에 대한 저작자 표시를 하이퍼링크나 URL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또한, 이 동의는 기여한 콘텐츠가 저장되고 배포된 이후에는 철회할 수 없음을 명확히 이해하고 동의합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8.118.210.6)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